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문단 편집) == 과정 == 민주정의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의 분열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득표율은 36.64%에 그쳤다. 게다가 대선을 통해 선호하는 당에 대한 지지가 뚜렷한 지역구도가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조금만 뒤틀리면 다시 독재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노태우 정권은 지지기반이 상당히 불안정했다. 비록 분열로 인해 대선에서는 졌다지만,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한겨레민주당이 단일화를 한다면 민주당계가 총선에서는 압승을 거둘 수도 있겠다는 전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권이 대선에 이어 총선 단일화에도 실패하며[* 다만 단일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 1번지"로 상징적 선거구인 [[종로구(선거구)|종로구]]에선 평화민주당의 [[박영숙]] 총재권한대행이 사퇴하면서(불출마 후 전국구 당선) 통일민주당 [[김명윤]] 총재권한대행으로 사실상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졌으나 김명윤 후보가 패배했다.] 결국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후보를 따로 내면서 분열하자 이에 대한 실망감이 더더욱 커지고 노태우 대통령도 [[5.18 민주화운동]] 강제진압 사과 등 상당히 유화적인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공천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인사 상당수를 배제하면서[* 물론 민정당 내 신주류들의 5공 세력 견제 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박철언]] 정책보좌관 등 자기 사람 심기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권익현]] 전 민주정의당 대표, [[권정달]] 전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등을 위시해 [[윤길중]], [[봉두완]], [[정석모]] 등 중진들이 대거 쫓겨났고, 89명의 현역의원 중 27명이 공천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박철언]], [[나창주]], [[강재섭]] 등 노태우의 가신들이 대거 공천되었다.][* 단, [[정석모]] 의원은 나중에 전국구로 구제받았다.] 일부 민주세력의 호감을 받아 이를 기반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바뀌던 것도 (당시로써는) 호재로 여겨졌다.[* 사실 민정당은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정 논의 당시에도 야권이 단일화하면 민정당이 과반은커녕 개헌저지선 이하로 밀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중선거구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중선거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도 전국구 1당 독식 규정 완화 때문에 국회에서 과반에 미달할 가능성이 컸던데다가, 민주당과 평민당이 갈등하며 분열상이 지속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할 경우에는 어부지리격으로 수도권 의석을 대거 싹쓸이 하여 의회 과반을 여유있게 차지할 것으로 판단하면서 소선거구제 전환을 당론으로 변경했고 결국 3월 8일에 소선거구제로 변경시키는 안이 통과되었다. 선거운동기간 초반까지만 해도 야권이 분열로 지리멸렬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그 예상이 맞아들어가는듯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꽤나 큰 판단착오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선 선거운동 기간 도중 예전과 같은 관권, 혼탁 선거가[* 대놓고 민정당 후보 선거유세장에 가면 국밥 같은 식사와 몇만원씩 든 돈봉투를 나눠줬고, 현역군인들의 부재자투표는 선거공보물만 받은 채 정작 표는 간부들이 모두 민정당 후보를 찍어서 보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펼쳐지면서 "이번에 민정당에게 몰아주면 다시 [[의원 내각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고, 설상가상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총재로 재직하면서 저지른 비리가 잇달아 드러나면서 민정당에게 악재로 작용하였고 민주당과 평민당,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며 선거 양상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선거 전 각 당의 목표 의석수는 민주정의당 과반수 의석(150석 이상) 확보,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은 제1야당 확보, 신민주공화당 및 기타 정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확보였다. 이 당시 노태우와 민정당은 직전 대선에서 대역전극을 만든 것에 너무 도취해 현실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돌려본 결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민정당은 지역구 85~92석을 얻는 것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올리자 되려 민정당 지도부가 사기를 꺾는 말을 한다고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노태우는 뒤늦게야 민심이 심상찮은 것을 알고 총선 3일 전 [[박철언]]과 월계수회에 대책을 마련하란 지시를 내리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